영원한 방송대인 정승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해남학습관장

정승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해남학습관 관장. 방송대에 대한 그의 애정과 자부심은 남다르다. 그래서인지 그는 어느 좌석에 있던 방송대에 대한 고마움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방송대에 대한 그의 애정과 자부심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그는 정년퇴임을 2년 앞두고 해남학습관에 부임했다. 순환보직 때문에 광주와 제주도를 거쳐 해남학습관으로 부임한 것이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정년퇴임을 앞두고 고향으로 임지를 옮기는 관행에 비추어 볼 때, 정 관장이 고향인 해남학습관의 관장으로 부임한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해남학습관의 역사에 있어 매우 특별하고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방송대의 선배로 해남학습관의 개관을 지켜보았고 어쩌면 해남학습관의 폐관을 지켜봐야 할 수도 때문이다.
그는 해남군 문내면 출신이다. 그가 청소년기를 보낸 1970~80년대의 문내면은 당시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동네였다. 하루하루 근근이 연명하던 집이 태반이었다. 이런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은 대단한 호사였다. 정 관장의 동네 친구 7명 중 2명 만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 당시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다행히 정 관장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사실 정 관장의 가정형편도 그리 좋지 않아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부보님의 배려로 고등학교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학진학은 사정이 달랐다. 도저히 대학입학금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정 관장은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대학진학이 힘들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대학진학에 대한 꿈을 버릴 수 없었다. 사정이 어려울수록 학업에 대한 열망은 농도를 더해 갔다. 그때였다. 지인으로부터 방송대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가난 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정 관장에게는 어둠속을 환하게 비추는 한줄기 빛과 같은 소식이었다. 정 관장은 이듬해 방송대에 입학했다. 그리고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정 관장은 1989년 방송대 전산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1991년 광주대 문헌정보학과를 편입했다. 그 후 방송대 광주지역대학 도서관 사서로 근무했다. 방송대가 정 관장 평생의 직장이 된 것이다.
해남학습관의 개관
당시 방송대는 서울대 부설학교였다. 2년제 과정으로 각 시군 공공도서관에서 학생들을 관리하며 방송대 교재를 대여해 주었다. 방송대 학생만 따로 이용할 수 있는 학습관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1984년 5월, 마침내 해남학습관이 개관했다. 당시 광주학습관 관장이었던 황산면 출신 임용주 관장이 당시 방송대 본교 권순찬 학장에게 건의해 군 최초의 해남학습관이 개관한 것이다.
“당시에는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지속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개관했는데, 요즘 대세인 사이버 교육과도 잘 맞아 떨어집니다. 임 관장님과 권 학장님은 30년 이상의 미래를 내다보신 겁니다.”
정 관장의 말이다.
정 관장은 방송대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방송대가 고위공무원 출신학교 5위에 든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겁니다. 이 결과만 가지고도 방송대가 우리나라 고등교육에 얼마나 일조했는지 증명이 될 것입니다. 얼마 전 국장으로 진급한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내게 고맙다는 인사였습니다. 내가 별로 잘 해준 것도 없는데 무엇이 고마웠을까요? 제가 그 친구에게 방송대를 권유했는데, 그 친구는 방송대를 졸업해 국장까지 진급할 수 있었던 겁니다.”
방송대는 명품학교
“본교에 입학하거나 편입한 학생들의 직업과 연령은 다양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보탠다면 학력도 다양합니다. 옛날처럼 가난한 사람만 입학하는 학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부족한 공부를 위해 편입한 학생도 있고 진로를 바꾸기 위해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후 입학한 학생도 있습니다. 지역 전문대학들이 채워줄 수 없는 지식을 방송대가 채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학교를 지역에서 잃는다는 것은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 관장은 부인 명숙경 씨와의 사이에 외아들 진석 씨를 두고 있다. 그런데 몇 달 전 아들 진석 씨를 출가시켰다. 집에는 두 부부만 남았다.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런데 그것도 여의치 않다. 정 관장의 집은 광주고 근무지는 해남으로 요즘 트렌드(?)인 주말 부부다.
정 관장은 부인 명숙경 씨를 만났을 때의 일화를 털어놓는다. 정 관장은 당시 사귀던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부모님은 정 관장이 부모님이 주선한 처자와 선보기를 원했다. 내키기 않았지만 부모님의 명이라 선을 보기로 했단다. 그 때 명숙 씨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은 따로 있는 것 같습디다”는 것이 정 관장의 설명이다.
영원한 방송대인 정승범 관장. 그의 앞길에는 정년퇴임이란 피할 수 없는 결정과 해남학습관의 존치라는 무거운 과제가 남아있다. 그가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역사회가 문제의식을 갖는다면 그가 진 짐은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전라닷컴 윤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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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help@jeo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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